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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from Flikr

by stan | 2005/12/20 13:11 | 트랙백 | 덧글(0)

소개: 유용한 사이트 몇 군데...

인터넷 서핑이라는 것이 대부분 허무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매번 그런 것만은 또 아니다.
요며칠 Wikipedia를 기점으로 몇가지 특정 용어의 의미를 뒤지다가 몇 군데 유용한 사이트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아직 접하지 못한 블로거들을 위해 링크를 남긴다.

1. 구지 이름을 부여하자면 "온라인 북마트 매니저"라고나 할까?
웹상에 북마크를 유지할 수 있으면 참 편하겠다고 오래 동안 생각해 왔고 또 찾아 다녔었는데
마침네... 이제 언제 어디서든 PC와 인터넷 연결만 되면 자신에 북마크에 접속하여 등록/수정이 가능하다. 한가지 더 이 사이트는 단순히 개인적 용도의 북마크 매니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북마크를 공유할 수 있게도 한다는 커다란 장점을 갖고 있다. 내가 특정 사이트를 북마크하면 해당 북마크를 북마크한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보여주고 이들의 북마크를 볼 수도 있게 해준다. 또한 북마크를 할 때 tag를 설정할 수도 있어서 자신이 북마크해놓은 사이트들을에 자신이 부여한 tag를 요즘 유행하는 tag cloud (tag cosmos)형태로 보여주기도 한다.

2. 두 번째 것은 이미 뭐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긴 한 것이지만 그래도 내 맘대로 명명하자면 "온라인 포토 매니저"이다. 온라인 북마크 메니저와 같은 개념에서 언제어디서든 사진을 등록하고 수정할 수 있으면 타인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3. 세 번째도 첫째 둘째와 같은 맥락에서 또 다시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해야 할일이나 특정한 행사 준비를 위해 해야 할일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웹서비스다. 우선 간단한 to-do list작성 및 유지 관리, 공유를 해주는 것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해야 할 일들을 유지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이벤트 체크리스트가 또 하나이다. 이와 더불어 좀 더 복잡한 프로젝트 관리에 사용할 수 있는 웹서비스인 베이스캠프라는 것도 함께 소개한다.


자! 이제 이정도로 무장하면 그때 그때 자신의 pc나 사무실에 있는 pc에 설치된 브라우저나 사진 관리 툴에 이중으로 북마크를 관리하고 사진을 올리고 일정이나 해야 할일을 중복으로 관리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by stan | 2005/08/23 17:00 | 트랙백 | 덧글(0)

“Intelligent Design”, 과학을 가장한 “창조론”

아마 Intelligent Design이라는 제목만 보고 이 포스트의 링크를 열어보려 마음 먹은 사람들은 “인공 지능을 갖춘 디자인”에 관한 글을 기대했을 것이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 Intelligent Design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 또한 새로운 놀라운 기술일 거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상황에 따라 자신이 스스로 판단 해서 디자인이 변형되는 뭐 그런 첨단 기술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 단어만 봤을 때 잠깐이나마 이런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Intelligent Design은 결코 어떤 기술이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Intelligent Design이란 다윈이 처음 주장했고 이후 과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져 오고 있는 자연 선택설과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한 진화론을 부정하고(주의: Intelligent Design이 “진화”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음) 진화라는 것이 “신”에 의해 신의 “목적” 하에 “고안”된 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리하자면 진화는 무작위적으로 자연의 선택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신이 신성한 목적 하에 고안내지 의도(디자인)한 데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Intelligent Design의 핵심이다.

Intelligent Design은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Discovery Institute”란 기관이 앞장서서 미국 전역에 강력하게 설파하고 있는 주장이고 최근 부시 대통령이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 Intelligent Design도 진화에 대한 “과학적” 가설로서 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시킴으로써 학생들이 다윈의 진화론과 Intelligent Design을 상호 대등한 위치에서 공부하고 둘 사이에서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언뜻 들어보면 타당한 주장인 것처럼 들린다. 똑 같은 과학적 가설인데 어떤 것은 학교에서 정규 과목으로 가르치고 어떤 것은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물어봐야 한다. 과연 “Intelligent Design”은 다윈의 진화론과 같은 수준에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합당한 반론으로서 취급될만한 자격을 갖춘 “과학”인가? 만약 그렇다면 예를 들어 우리가 과학계에서 오래 동안 빛의 속성에 대한 두 가지 대립되는 가설(파장론 vs. 입자론)로 논쟁을 벌이는 것처럼 Intelligent Design도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반박으로 받아들여지고 같은 지휘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Intelligent Design은 신학이나 문화, 사회적 가치관, 철학의 영역에서는 논의될 수 있는 주제이지만 과학의 영역에는 설 자리가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과학의 영역에서 다뤄질 수 있는 것은 “오류의 가능성을 지닌 검증 가능한” 가설이지 “오류의 가능성이 전혀 없으며 검증도 할 수 없는” 가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Intelligent Design은 오류의 가능성이 없다. 왜? 첫째 신은 오류를 모르기 때문에 Intelligent Design은 오류의 가능성이 없다. 둘째 Intelligent Design은 검증도 할 수 없다. 하려 해서도 안된다. 왜? 신이 해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Intelligent Design의 신봉자들이 Intelligent Design을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그에 따라 학교 교과 과정에 Intelligent Design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표면상 보면 “Intelligent Design” 신봉자들은 창조론자들과는 달라 보인다. 어떤 점에서? 진화 자체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물론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하지만 여전히 “아직까지” 인간의 인식 능력 밖에 존재하며 그에 따라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에 의지한다는 점에서는 창조론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진화 자체를 인식할 때까지 진화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에 따라 창조론자들은 만물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제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화가 무엇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느냐?”이다. 인류는 이에 대해 확실한 과학적 해답을 갖지 못하고 있고 많은 과학자들이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신”의 divine guidance를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Intelligent Design 신봉자들은 창조론자들과 근본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종교 자체를 반대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모든 종교를 존중하고 종교의 가치관을 존중하며 믿음을 갖고 자신이 가진 믿음의 가르침에 충실한 사람들을 존중한다. 다만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창조론이나 Intelligent Design와 같은 창조론의 변종이 과학의 영역에서 다른 과학적 가설들과 동등한 지휘에서 논의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by stan | 2005/08/12 10:57 | 트랙백 | 덧글(0)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혹은 단체를 꼽아주세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블로거 여러분들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궁금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에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무언가 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하던가/하면서
실제 행동의 형태로 움직이도록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가
저는 궁금합니다.
블로거 여러분들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블로거들이 생각하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 혹은 단체(온라인 오프라인 망라해서)는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왜냐고요?
저는 제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알고 싶습니다. 이건 단수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가만히 지금 누군가의 영향권 내에 안주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영향력을 갖춘
사람이나 단체에 저 자신을 노출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특정 인물도 좋고, 물리적 사회 단체도 좋고, 특정 웹사이트도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나 단체를 소개해주십시오. 거창한 인물이 아니어도 좋을 것입니다.

주의사항:
"힘"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을 강제로 물가까지 끌고갈 순 있지만 강제로 물까지 먹일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죠.













by stan | 2005/08/03 10:32 | 트랙백 | 덧글(0)

소통의 대상을 향해 왜 침을 뱉을까?

주말 한 인디 밴드의 공중파 알몸 노출 소동을 보면서...

진부하지만 항상 중요한 질문을 다시 되세길 수밖에 없었다.
"너는 니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니?"

그 인디밴드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자신들이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의사소통의 대상자(관객 및 시청자)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뽑아들며 "이거나 먹어라"라며 모욕을 줬다는
사실을 지금쯤은 깨닫고 있을까?

주류 뮤지션과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같에 가장 큰 공통점이 무엇인가?
그것은 공히 음악하는 동료 뮤지션들(주류, 비주류 뮤지션 모두 포함)은
물론 일반 대중을 의사 소통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뮤지션도 자신의 소통의 대상자인 일반 대중을
욕보일 수 없다. 대화 상대에게 욕부터 해대고 대화할 수 있겠는가?
자유로운 음악적 표현과 새로운 음악에 대한 탐구라는 인디 정신의
바탕도 대화 상태에 대한 존중인 것을 우리 인디 밴드들이
이번 기회를 빌어 깨닫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인디밴드는 이렇게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잘못만 범한 것에
머물지 않았다.

참으로 우습게도 그들은 자신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냥 평소 하던 데로 했다고 그들은 말했다.
또한 그들은 비겁했다. 꼴사나운 가부끼 분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놀란 언론의 카메라 세례 앞에 그들은 얼굴을 가렸다.

음악계의 인디 아티스트들은 주류를 견제하고 대중 음악 분야 전체의
표현 영역을 넓힌다는 대단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이처럼 언더그라운도는 중요하다. 주류의 영역이 편협해지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음악을 즐기는 일반 대중들에게 끝없이 새로움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소중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언더그라운드를 이처럼 비겁하고,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왜 그 행동을 했는지도 모르는 이런 사람들에게
위험하게 노출되어 왔던 것이다. 바로 이 위험성이 이번 해프닝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이 점에서 그 인디밴드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인디 음악계 자체의 심각한 문제를 표면화시켜주고
인디 아티스트들이 이에 대해 심각하게 토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는 측면에서는 공헌을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8월 2일 인디 아티스트들의 기자회견을 기대해보자.



by stan | 2005/08/01 17:53 | 트랙백 | 덧글(0)

NASA의 용기에 찬사를...

나사 장래 계획되어 있던 왕복선 발사 모두 중단

콜럼비아호가 공중 폭발된 이후 2년 반이 지난 후
나사에서 성공적으로 디스커버리호 발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발사 후 36시간만에 돌연 나사는 미래 계획되어 있는
모든 왕복선 발사 계획을 중단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유는...
콜럼비아호 참사를 유발시켰던 것과 동일한 문제가 이번 디스커버리호
발사 시에 또 다시 발생했기 때문이다. 콜럼비아호가 공중 폭발한 이유는
발사 시 외부 연료 탱크 표면에 설치되어 있던 내연 타일이 고열에 벗겨져
나가면서 그 잔해가 콜럼비아호 동체를 타격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나사는 많은 예산을 투하하고 신기술을 도입했고
철저한 조사와 테스트를 했고 그 결과 왕복선 발사를 재개해도 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발사 성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콜럼비아호에 부착된 모니터링
카메라에 잡힌 이미지를 분석한 결과 또 다시 외부 연료 탱크에서 내연 타일이
벗겨져 나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결했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재발했고
다행히 이번엔 "운이 좋아서" 참사를 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인 상황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따라서 이런 경우 쉬쉬하여 은폐하고 남들이 알기 전에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금번 나사는 불과 발사 후 36시간만에 그것이 무엇인진 모르지만
자신들이 간과한 것이 분명있으며 그에 따라 그 간과한 것이 무엇이며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왕복선 발사는 무기한 중단한다는
발표를 발빠르게 한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 관한한 잘못은 숨기면 인명의 손실을 유발하고 범죄 행위가 된다.
하지만 용기 있게 잘못을 인정하면 사람들로부터 용서와 격려 그리고 기도를 받게 된다.

by stan | 2005/07/29 09:17 | 트랙백(4) | 덧글(1)

휴대폰을 이용 무선으로 인터넷을 하게되면서...

6년간 사용하던 휴대폰인 스타텍을 접고 레이저로 기변을 하면서
처음으로 휴대폰과 노트북을 연결하여 인터넷을 해보았다.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가 되면

http://blog.empas.com/juriii/tb/6285125

by stan | 2005/07/27 17:42 | 트랙백 | 덧글(0)

삶을 그려낼 수 있는 개그맨을 기다리며...

오래 도록 우리 기억에 남는 "예술적 표현"이라는
형태를 가진 인간의 놀이들을 살펴봤다.
그러면서 이것들은 왜 우리 속에 계속 남아
자꾸 자꾸 떠오르는 것일까를 생각해봤다.

그 이유는 그 안에 "인간이 삶속에서 빗겨갈 수 없는
환희와 고뇌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의 개그를 보면 그 수명이 너무나 짧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다.
그 이유는 개그가 삶의 환희와 고뇌에 가 닿아 있지 않고
단순히 힘든 삶을 잊게 하고 맺힌 것을 순간적으로
배출해 내는 배설 기관으로밖에 작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개그라는 아주 오래된 한 표현 체계에 대해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른 표현들과 마찬가지로 개그도 삶을 피해가지 말고
삶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엔 개그도 코메디도 그랬다.
웃음 속에 어떤 처연함이 묻어 있었다.
너무나 슬퍼, 너무나 기뻐 그 느낌을
우스꽝 스런 몸짓과 말로 표현했다.
너무나 불만스러워 너무나 얄미워
얄미운 대상을 희화시켜버렸다.

개그는 이제 삶에 대한 애정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 삶의 간난신고에 아예 무관심해저 버린 것 같다.
웃음 그 자체에만 집착한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웃게만 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다.

상대를 바보로 만듦으로써
"저런 바보도 있었네. 참 웃기는 바보다"라는
안도감 섞인 웃음을 이끌어낸다. 시종일관.
차라리 자기 자신이 바보가 됨으로써
웃음을 선사했던 사람들이 낫지.

게그맨도 나처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텐데
집단에 영향을 받고 사회에 영향을 똑 같이 받고 살텐데
저들은 왜 자신들이 삶에 느끼는 기쁜과 슬픔을
자신의 작품 속에 집어 넣을 생각을 하지 않을까?

어렵겠지. 정말 어렵겠지.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아닐테고
게그맨 그들 자신 또한 게그라른 것을
삶을 표현하는 값진 수다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을테니까

게그맨 코메디언 분들이여!
당신들은 아무 생각 없는 광대일 수 없습니다.
당신들을 예술가들입니다.

나의 삶과 그들의 삶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게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으면...

그렇다면 그는 영웅이요 진정한 창조자일텐데...
나는 "고도"는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나는 "삶은 고민하는 게그맨"은 기다린다.



by stan | 2005/07/25 11:39 | 트랙백 | 덧글(0)

조종사님들! 싸움은 이겨놓고 시작해야 한답니다

일반 대중의 "이동성"과 "경제적 활동"에 영향을 주는 파업은 이들 일반 대중의 호응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일반 대중으로부터 지지 혹은 최소한의 공감대라도 얻는 데 실패하면 고용주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도 투쟁의 상대가 되버리고 만다.

바로 이 제일 중요한 부분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시아나 기장들의 파업은 성공할 수 없는 것이고, 비록 일부 요구 사항이 관철된다 하더라도 이후 일반 대중들부터의 불신 속에 살아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나 노조는 파업을 선언하고 공항에서 걸어나오기 전에 가장 먼저 "과연 우리가 파업에 대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대의명분이 있는가를 면밀히 검토했어야 했다. 자신들의 요고 사항을 나열해 보고 이렇게 파악된 요구 조건들이 사측은 차치하고 일반 대중들에 (타 노동자들에 의해) 의해 납득될 수 있을 것인지를 100번이고 1,000번이고 되씹어봤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정도는 되야 파업을 선언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점은 조종사들이 소위 말하는 고액 연봉자들이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다.

또 한 가지 조종사 노조는 인원 확충에 대한 요구를 몇 년간 꾸준히 해왔고, 회사는 이에 대해 기다려 달라고 하며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이유로 노조에서는 인원이 부족하니 비행일정이 무리하고 조종사 피로가 누적되어 안전운항에 위협이 되고 이는 사고의 위험을 가중시킴으로 궁극적으로 "승객의 안전을 위해 조종사의 근무 조건이 지금에 비해 개선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자! 여기서 파업의 대의명분이 있다. "승객의 안전"이 그것이다. 다시 대의명분은 "우리는 승객을 걱정한다" "그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이다.

충분한 대의명분이라고? 그렇다 말 그 자체로는 너무 아름답고 어여쁜 대의명분이다.
하지만 대의명분은 말로 확보되지 않는다. 대의명분을 명확히 갖추고 대의명분에 대해 공감대와 동감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조종사 노조가 승객을 위해 무엇을 해왔는가가 중요하다.

노조 기금으로 지금까지 10억을 모아놨다고 한다(현재 파업 기금으로 사용되고 있겠지).
이렇게 많은 돈을 모으면서 지금까지 조종사 노조는 자신이 벌어 먹고 살게 하는 데 도움을 준
승객이라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이다. 승객 뿐만 아니라 사회 발전이나 헐벗고 굼주린 사람들을 위해 결식 아동을 위해 무의탁 노인을 위해 어떤 눈에 띌만한 진정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어떤 활동을 해왔느냐 이다.

노조는 돈 모아서 파업이라는 물리적 투쟁 그 자체, 보이는 투쟁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자신들이 진정 사람의 생명을 존중한다. 힘든 사람들을 아낀다"라는 사람이나 단체가 할 수 있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어야 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는 참 물리적으로 시간을 내서 봉사 활동에 참여하지는 못하더라도 금전적인 측면에서나만 어려운 사람들 돕고 사회 환경 개선에 기여하는 데 노력을 많이 한다"라는 인식이 사람들 뇌리에 인식되어 있었다면...
금번 파업을 진행하면서 "승객의 안전을 위해..."라는 그들의 대의명분은 아주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에게 받아들여 졌을 것이고, 그렇다면 노조는 파업을 할 필요도 없이 일반인들의 지지를 등에 없고 사측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끝으로 정리하자면 말로만 "승객 안전"을 예기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으로 "승객 안전"을 위한 활동을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일반 대중의 "이동성"과 "경제적 활동"에 영향을 주는 파업은
절대적으로 "먼저 승리해놓고 시작하는 싸움이 되야 할 것이다".

한 블로거의 말에 의하면 조종사들은 현재 조종사들의 파업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높은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고 하던데
왜 이렇게 준비 없이 파업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 뛰어난 사람들이라면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이길 수 밖에
없는 조건을 갖춰놨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뛰어난 사람들이 왜 지금 "지는 싸움"을 시작해서 밀고
나가고 있는지 나로선 이해하기 힘들다.

조종사님들 다음 파업할 때는 꼭 이기는 파업하시길 기원합니다.

by stan | 2005/07/20 15:44 | 트랙백 | 덧글(0)

청소 아주머니의 고객 만족도 조사

바쁜 아침 시간...
헐레벌떡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 어머니 나이 정도 되신 청소하시는 아주머님이
기웃 기웃 눈치를 보시면서 종이 한장을 책상에 내려 놓으며
쑥쓰러운 어투로 "이거 한장만 해주세요"라고 말씀하신다.
제목은 "고객만족도 조사"...

햐! 이제 이 망할놈의 고객 만족도 조사가 청소 아주머니 선까지
내려 오는구나.
왠지 모르겠지만 청소 아주머니에게 저런 일까지 시키는 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아주머니는 자신이 왜 고객 만족도를 조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기는 하실까? 또 알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이 소비의 사회에서 체제에서 고객을 뻑가게 해야
돈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얼마나 내가 고객을 편하게
해줬는지 조사해야 하는 것은 또 당연한 것이겠지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청소 아주머니에게만은 요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한경쟁 시대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변화를 알아야 하고 변화에 적응해야 하고
변화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도 기업의 의사 결정권자들도
이런 현실에 목이 조여옴을 느낀다.
어려운 시절이다.
누구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어머니 또래의 분들에게만은
최소한 예외가 인정되었으면 좋겠다.

좀 슬펐다. 종이 들고 종종 걸음으로 사무실을
뛰어다니시던 그 아주머니의 모습

by stan | 2005/07/18 13:5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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